법관 입맛에 맡겨버린 ‘참 모호한’ 아청법
By 채반석 On 2015.07.15
지난 6월25일 헌법재판소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제2조 제5호 등에 대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판결문을 차근차근 짚어보고 뭐가 문제였는지, 헌법재판소는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8조 제2항 및 제4항 중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
계기가 된 사건은?
이번 판결은 위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 2건, 헌법소원 1건을 묶어서 내린 것입니다. 문제가 된 영상물은 ‘교복을 입은 여성이 성행위를 하는 음란물’ ,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남학생과 성행위를 하는 음란 애니메이션’ , ‘ “A uniform beautiful Girl Club” 이라는 음란물(검색 주의 + 후방 주의)’입니다. 위헌제청을 하고 헌법소원을 낸 당사자들은 ‘성인이 교복을 입은 음란물’과 ‘가상의 여학생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때문에 처벌을 받는 게 부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아청법이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는지를 다뤘습니다.
더 읽어보세요!
만화만 봐도 성범죄자?…‘아청법’ 찬반논쟁
(http://www.bloter.net/archives/161240).
"아청법은 아이들 인권 보호법"
(http://www.bloter.net/archives/161924)
쟁점 1 : 무엇이 범죄인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은 ‘무엇이 범죄인지 명확해야 한다’ 는 내용입니다. 법을 보면 내가 할 수 있고/할 수 없고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합헌의견은 ‘아동 ·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이 무엇인지 시민들이 충분히 알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판결문의 요지를 살펴보면 실제로도 ‘충분하다’ 는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실제 아동 · 청소년으로 오인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 , ‘아동 · 청소년을 상대로 한 비정상적 성적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행위’ , ‘일반인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행위’ 이기 때문에 법관이 논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법관들이 딱 보면 알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반대의견은 ‘아동 ·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의 부분이 애매하다고 지적합니다. 표현물에 그림이나 만화 등이 모두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처벌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미리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아청법을 그대로 둘 경우 법관이 멋대로 판단하는 자의적인 법 해석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한 ‘그 밖의 성적 행위’ 부분도 마찬가지로 통상의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할 때 예측하기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론을 비판합니다. 박경신 교수는 지난 7월9일 있었던 오픈넷 특강 [철컹철컹 예방 특강 _ 아청법 판결에 부쳐] 에서 “헌법재판소의 합헌의견은 ‘아동 · 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유발하기에 충분한 것으로만 한정’ 하면 괜찮다고 했지만 그게 뭔지 전혀 모르겠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또한 “아동 · 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해악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걸 유발할 가능성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형사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 라고 강조했습니다. 마약이나 살인에 대한 경계심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처벌받지는 않는데, 아동 · 청소년 대상의 가상포르노만 문제라고 하면 이상하다는 것이지요.
쟁점 2 : 아동 · 청소년 대상 음란물이 성적충동을 일으킨다?
합헌의견은 아청법이 과잉금지원칙(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가상의 아동 · 청소년이용음란물은 실제 아동 · 청소년이 등장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동 · 청소년을 상대로 한 비정상적 성적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 하기 때문에 아동 ·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규제는 정당하다는 논리입니다. 아동 ·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을 본 사람은 아동 ·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을 실행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상이든 실제든 큰 차이가 없다는 논리도 여기에 근거합니다. 가상과 실제의 차이는 법관이 감안하여 처벌의 정도를 정하면 된다고 봅니다. 어련히 잘 할 거라는 낙관적인 태도가 엿보입니다.
반면 반대의견은 아동 · 청소년 대상 음란물이 성적충동을 일으킨다는 명제부터 동의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아동 · 청소년 대상 음란물과 아동 · 청소년 성범죄 사이의 인과관계는 밝혀진 바 없습니다. 아동 ·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경우 아동 · 청소년 음란물을 많이 봤다는 상관관계 정도를 설명하는 연구가 있을 뿐입니다. 음란물을 봤을 때 성범죄를 저지르는지에 대한 연결고리를 설명하는 연구는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반대의견은 그저 ‘아동 ·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들을 조사했더니 야동 많이 봤더라!’ 라는 식은 안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반대의견은 유해성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의심만으로 아동 ·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과 실제 아동 · 청소년이 등장하는 경우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아청법 처벌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고, 표현을 위축할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애매한 법조항의 충분한 효과가 가져오는 부작용
아청법 합헌 결정에 대한 만화계의 우려가 큽니다. 오픈넷 특강에 패널로 참여한 이동우 만화가는 “지금의 아청법은 상상에 대한 규제다”라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들에 대해서도 규제가 가해진다면, 표현예술에 대한 위기감을 올리는 결과로 작용할 것” 이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애매한 법 조항은 최대한 몸을 사리게 만듭니다. 까딱 잘못하면 5년 이상의 처벌을 받는 상황입니다. ‘충분하다’의 기준이 뭔지 누구도 알려준 바 없습니다. 특히나 법관은 보수적이라는 게 일반의 인식입니다. 아청법은 창작자들의 표현활동에 실질적인 제약으로 계속 작용할 전망입니다.
By 채반석 On 2015.07.15
지난 6월25일 헌법재판소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제2조 제5호 등에 대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판결문을 차근차근 짚어보고 뭐가 문제였는지, 헌법재판소는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8조 제2항 및 제4항 중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
계기가 된 사건은?
이번 판결은 위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 2건, 헌법소원 1건을 묶어서 내린 것입니다. 문제가 된 영상물은 ‘교복을 입은 여성이 성행위를 하는 음란물’ ,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남학생과 성행위를 하는 음란 애니메이션’ , ‘ “A uniform beautiful Girl Club” 이라는 음란물(검색 주의 + 후방 주의)’입니다. 위헌제청을 하고 헌법소원을 낸 당사자들은 ‘성인이 교복을 입은 음란물’과 ‘가상의 여학생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때문에 처벌을 받는 게 부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아청법이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는지를 다뤘습니다.
더 읽어보세요!
만화만 봐도 성범죄자?…‘아청법’ 찬반논쟁
(http://www.bloter.net/archives/161240).
"아청법은 아이들 인권 보호법"
(http://www.bloter.net/archives/161924)
쟁점 1 : 무엇이 범죄인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은 ‘무엇이 범죄인지 명확해야 한다’ 는 내용입니다. 법을 보면 내가 할 수 있고/할 수 없고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합헌의견은 ‘아동 ·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이 무엇인지 시민들이 충분히 알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판결문의 요지를 살펴보면 실제로도 ‘충분하다’ 는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실제 아동 · 청소년으로 오인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 , ‘아동 · 청소년을 상대로 한 비정상적 성적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행위’ , ‘일반인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행위’ 이기 때문에 법관이 논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법관들이 딱 보면 알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반대의견은 ‘아동 ·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의 부분이 애매하다고 지적합니다. 표현물에 그림이나 만화 등이 모두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처벌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미리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아청법을 그대로 둘 경우 법관이 멋대로 판단하는 자의적인 법 해석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한 ‘그 밖의 성적 행위’ 부분도 마찬가지로 통상의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할 때 예측하기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론을 비판합니다. 박경신 교수는 지난 7월9일 있었던 오픈넷 특강 [철컹철컹 예방 특강 _ 아청법 판결에 부쳐] 에서 “헌법재판소의 합헌의견은 ‘아동 · 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유발하기에 충분한 것으로만 한정’ 하면 괜찮다고 했지만 그게 뭔지 전혀 모르겠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또한 “아동 · 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해악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걸 유발할 가능성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형사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 라고 강조했습니다. 마약이나 살인에 대한 경계심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처벌받지는 않는데, 아동 · 청소년 대상의 가상포르노만 문제라고 하면 이상하다는 것이지요.
쟁점 2 : 아동 · 청소년 대상 음란물이 성적충동을 일으킨다?
합헌의견은 아청법이 과잉금지원칙(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가상의 아동 · 청소년이용음란물은 실제 아동 · 청소년이 등장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동 · 청소년을 상대로 한 비정상적 성적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 하기 때문에 아동 ·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규제는 정당하다는 논리입니다. 아동 ·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을 본 사람은 아동 ·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을 실행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상이든 실제든 큰 차이가 없다는 논리도 여기에 근거합니다. 가상과 실제의 차이는 법관이 감안하여 처벌의 정도를 정하면 된다고 봅니다. 어련히 잘 할 거라는 낙관적인 태도가 엿보입니다.
반면 반대의견은 아동 · 청소년 대상 음란물이 성적충동을 일으킨다는 명제부터 동의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아동 · 청소년 대상 음란물과 아동 · 청소년 성범죄 사이의 인과관계는 밝혀진 바 없습니다. 아동 ·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경우 아동 · 청소년 음란물을 많이 봤다는 상관관계 정도를 설명하는 연구가 있을 뿐입니다. 음란물을 봤을 때 성범죄를 저지르는지에 대한 연결고리를 설명하는 연구는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반대의견은 그저 ‘아동 ·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들을 조사했더니 야동 많이 봤더라!’ 라는 식은 안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반대의견은 유해성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의심만으로 아동 ·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과 실제 아동 · 청소년이 등장하는 경우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아청법 처벌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고, 표현을 위축할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애매한 법조항의 충분한 효과가 가져오는 부작용
아청법 합헌 결정에 대한 만화계의 우려가 큽니다. 오픈넷 특강에 패널로 참여한 이동우 만화가는 “지금의 아청법은 상상에 대한 규제다”라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들에 대해서도 규제가 가해진다면, 표현예술에 대한 위기감을 올리는 결과로 작용할 것” 이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애매한 법 조항은 최대한 몸을 사리게 만듭니다. 까딱 잘못하면 5년 이상의 처벌을 받는 상황입니다. ‘충분하다’의 기준이 뭔지 누구도 알려준 바 없습니다. 특히나 법관은 보수적이라는 게 일반의 인식입니다. 아청법은 창작자들의 표현활동에 실질적인 제약으로 계속 작용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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